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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교훈을 찾고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데는 인물 중심의 교육학습이 매우 효율적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역사적 인물을 불멸의 신체로 소환한 동상이나 영정은 그 시대의 역사를 상기하면서 자연스럽게 위인의 업적을 기릴 수 있는 수단으로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 일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역사 인물 중 동상이 가장 많이 세워진 인물은 임진왜란을 극복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일 것이다.
동상과 같은 취지로 제작된 표준 영정 제1호도 이순신 장군이다. 이 영정은 장군의 고향인 충남 아산 현충사에 봉안돼 있다.
그런데 이 나라를 최초로 통일해 '1민족 1국가' 체제를 이룩한 김유신 장군의 동상은 몇 기나 있을까.
필자가 알기에는 서울 남산공원과 경주 황산공원에 기마상이 있고, 대전 육군대학교 교정에 또 하나의 동상이 있다.
그리고 김유신 장군의 표준 영정은 충북 진천 길상사에 봉안돼 있다.
김유신 장군은 진평왕 17년(595) 충북 진천에서 출생했다. 장군의 아버지 서현(敍玄) 장군이 만노군(萬弩郡·진천군의 신라시대 이름) 태수(太守·신라 때 고을의 으뜸벼슬)이어서 진천읍 상계리에서 태어났다.
김유신 장군의 할아버지는 가락국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아들 무력 장군이다. 무력 장군은 554년 관산성(충북 옥천) 전투에서 대가야와 연합한 백제군을 대파하여 한강유역을 신라가 독점하게 됐다.
이로 인해 가락계인 무력 장군-서현 장군-김유신 장군 3대의 전공이 쌓여 신라의 군사권을 장악하고 삼국통일의 중심에 서게 됐다.
이와 같은 무력, 서현, 김유신 장군의 활동무대는 당시 신라 변방지역인 충청북도 지역이었다.
3국 중 가장 약한 나라였던 신라가 법흥왕 19년(532) 가락국을 병합하고 낙동강 하류인 김해평야와 양산 물금지역을 획득하면서 고구려, 백제와 대항할 수 있는 인적, 물적 자원을 확보할 수 있게 됐고 군사력이 크게 강화돼 통일의 기반을 다지게 됐다.
가락계의 왕자 무력 장군은 관산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백제군을 제압했고 그의 아들 서현 장군은 629년 낭비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고구려군의 기세를 꺾었다.
이와 같은 할아버지, 아버지의 전공을 기반으로 신라군 총사령관이 된 김유신 장군은 진천에서 태어나 무술을 연마한 출장입상(出將入相)의 용장으로 삼한일통을 이룩한 동방 제1의 명장이다.
문화관광부 표준영정 제작심의위원회에서는 장군의 표준영정을 제작해 길상사 영정각에 봉안하고 있다.
장군의 동상을 출생지이자 삼한일통의 활동무대였던 충청북도 진천에, 민족웅비의 상징인 통일교육의 도장이 진천에 세워지기를 소원한다. < 저작권자 © 중부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