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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성군민들이 자긍심을 가질만한 역사적 숨은 인물들이 발견됐다.
독립운동사에 있어서 유일무이한 독립군 부부가 음성 출신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들은 초대 음성군수를 지낸 장현팔씨의 다섯째 동생인 故 장현근(1909-1969)씨와 그의 부인 신정숙(1910-1997)씨.
음성읍 신천2리에서 태어난 장현근 씨는 개성상업학교 재학중 일본에 항의하다 퇴학당하고, 전북 토리교회에서 친형 장현팔씨와 항일민족정신을 고취시키는 등 후진양성에 힘썼다.
이후 1931년 상해로 망명해 임시정부에서 김구 주석 비서로 활동하다 평안북도 의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신조준 선생의 딸인 신정숙 씨와 19세에 결혼하게 됐다.
신씨는 남편과 뜻을 같이해 김구 개인 비서 등으로 활동하다 한국광복군 징모처 제3분처 초모위원겸 회계조장을 맡아 정보수집, 대적방송공작, 선전활동 등 활약을 펼쳤다.
신씨는 김 구 주석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도 함께 수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씨의 용맹스러움은 중국에서도 화제가 돼 1942년 장개석으로부터 “한 명의 한국 여인이 1천 명의 중국 장병보다 더 우수하다”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장현근·신정숙 독립운동가 부부가 거주했던 거주지는 아직도 음성읍 중리길 97-15(신천2리)에 현존하고 있다. 현재 장현근 씨 조카인 장봉원 씨가 소유하고 있는 이집 거실에는 전선으로 향하기 직전 광복군 수뇌부들이 찍은 사진과 김국 주석이 신정숙 씨에게 써 준 글씨가 걸려있다.
이 사진속에는 김구 주석을 비롯해 이시영, 이청천 등 임시정부 요원들과 함께한 신정숙 씨가 있다.
현존 인척은 일제시대때 두 부부 때문에 둘째 작은 아버지가 일본 경찰 칼에 찔려 돌아가시는 등 갖은 핍박을 받은 것으로 밝히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음성군 역사학계 관계자들은 본격적으로 기념사업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하고 있다.
음성군 향토문화 발굴에 심혈을 기울여오고 있는 박종대 음성문인협회장은 “독립운동가 장현근·신정숙부부의 존재는 음성군민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줄 수 있는 자랑스런 역사”라며 “자료를 수집해서 하루빨리 기념사업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음성군은 두 부부와 관련한 자료를 모아 검증을 거친 후 사업을 진행할 계획에 있지만 많은 자료들이 소멸된 관계로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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