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에서 신의 경지에 오른 입신(入神)들이 9월19일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 갈은구곡(葛隱九曲) 중 9곡인 선국암(仙局嵒)에서 특별 대국을 펼쳐 바둑계에 큰 관심이 쏠렸다.

'신(神)들'의 특별 대국은 이날 오전 10시 9단인 김인(72) 국수(國手)와 유창혁(49) 왕위(王位)의 대결로 진행됐다.

두 입신은 두루마기를 입고 선국암의 너른 바위 면에 음각된 바둑판에서 김인 국수가 백(白)을, 유창혁 왕위가 흑(黑)을 쥐고 승패 없는 대국을 벌였다.

100년가량 된 선국암 바둑판은 '四·老·同·庚(사·노·동·경)'이란 글자가 네 귀퉁이에 한 글자씩 새겨져 있다. '동경(同庚)'은 동갑내기를 이른다.

김인 국수는 "바위 위에 새겨진 바둑판을 처음 보았다. 실제 바둑을 둘 수 있다는 데 깜짝 놀랐다"며 "바둑판이 생각보다 선명하고 선인들이 이런 곳에서 바둑을 뒀다는 게 훌륭하다"고 말했다.

유창혁 왕위는 "처음엔 어색했는데 돌이 놓이고 보니 충분히 대국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두 입신은 바위에 새겨진 바둑판에서는 처음으로 대국을 펼쳤다.

김인 국수는 1958년 프로에 입단했고 1973년 조훈현에게 최고위전을 넘겨주기 전까지 10년 동안 대한민국 바둑계에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1983년 9단으로 승단했다.

유창혁 왕위는 1984년 입단 이후 신인대회 수상을 시작으로 세계대회 우승 6회 등 세계대회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선국암에는 다음과 같은 한시(漢詩)가 새겨져 있다.

玉女峰頭日欲斜(옥녀봉 산마루에 해는 저물어가건만)
我棋未了各歸家(바둑은 아직 끝내지 못해 각자 집으로 돌아갔네)
明朝有意重來見(다음 날 아침 생각나서 다시금 찾아와 보니)
黑白都爲石上花(바둑알 알알이 꽃 되어 돌 위에 피었네.) <이상주 중원대 교수 역>

선국암은 가히 신선이 바둑을 둘 만한 곳이다.

갈은구곡 가운데 마지막 9곡인 선국암에서 20여 m 떨어진 곳이 '일곱 마리 학이 사는 동네'를 뜻하는 8곡 칠학동천(七鶴洞天)이다.

학을 타고 노는 신선이 머문 이곳이야말로 이상향인 선경(仙境)이 아닐 수 없다.

이번 특별 대국에서는 박노상 청주시립국악단 수석단원이 대금 연주로, 문화공간 매설당 이진우 대표가 차(茶) 시연으로, 괴산군바둑협회 정순오 전무가 시화(詩畵)로, 이동원 서예가가 '仙局嵒(선국암)'을 붓사위로 경축했다.

괴산군바둑협회 정순오 전무는 "선국암은 가히 두 국수의 특별 대국으로 가치가 더 빛났다"고 말했다.